해양학

해양학 개론과 기원

서울시골사람 2023. 1. 11. 08:11
반응형

해양학은 말 그대로 바다 그 자체와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러가지 공학, 이를테면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과 바다와 주위에 적용할 여러 학문 분야를 포함한다. 해양학의 세부학문으로는 해양공학, 해양생물학, 물리해양학, 해양지질학, 화학해양학 등이 있다.
각 세부학문이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지 알아보면, 해양공학은 선박, 항만, 석유 플랫폼 등 해양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구조물의 건조·설계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 항해의 안전성 제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해양생물학은 해양생물의 분포와 특성, 해양-대기의 상관관계로 인한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해양생물로부터 유용한 물질을 얻기 위해 연구하는 분야로 이를테면 바다에서 나는 생물자원을 연구한다. 물리해양학은 파랑역학, 해류, 해양-대기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최근 이 학문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한 예측이 중요해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해양지질학은 지구 내부의 성분, 지각의 변동, 해저퇴적물의 특성, 고기후에 대한 연구를 한다. 해양지질학은 순수 학문분야를 넘어 지진예측이나 지하자원의 분포를 분석하는 실용적인 학문에도 영향을 주는 학문분야이다. 화학해양학은 해양의 용존 물질과 이 성분들이 해양에 미치는 각 학문적 관련성을 연구한다.



해양학의 기원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바다와 파도, 해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것으부터 시작한다. 기원전 384-322년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트라본이 기록하였다. 바다에 대한 최초의 탐험은 주로 지도 제작을 위해 이루어졌는데, 어부들의 초기 양식과 해양의 표면에 대한 것들이다. 이후 납선을 이용한 바다의 깊이 측정 또한 이루어 졌다. 또, 해류에 대한 정보는 제임스 쿡과 부갱빌을 포함한 18세기 후반의 탐험가들에 의해 수집되었으며, 제임스 레넬은 희망봉 주위를 항해하며 간헐적 해류에 대해 이해하고 대서양과 인도양의 해류를 자세히 설명하는 해양학에 대한 최초의 과학 교과서를 썼다.
해양학이 인류학사에 특히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긴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했는데, 1494년 토르데시야스조약을 체결하여 카보베르데섬 서쪽 서경46도 지점을 기준으로 남북방향으로 일직선을 그어 동쪽은 모두 포르투갈이, 서쪽의 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하기로 하였다. 이 조약을 통해 포르투갈이 인도산 후추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미대륙에서 브라질만이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 조약으로 인한 것이다.
또, 15세기 아소르스제도의 ‘재발견’은 현재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 돌아오는 항로에 있는 섬의 전략적 중요성과 사르가소해에 대한 기존의 이야기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복귀하기 위한 항로로 쓰였는데, 항해 도중 남동풍과 북동풍을 이용하여 서풍이 선원들을 유럽의 서해안으로 이동시키는데 필요했다.
체계적으로 지속된 최초의 연구활동으로는 포르투갈의 대서양 해류와 바람에 대한 항해법 연구가 있다. 수학자 및 천문학자로서 인정받았던 포르투갈의 수학자 페드루 누네스는 1527년부터 왕실에 임명될 때까지 조종사 및 선임 선원의 교육에 관여하였는데, 2차원상의 지도에 표시된 두 지점의 지구에서의 최단경로인 사항곡선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노후에 출간한 책에서 기하학적, 천문학적인 탐색 방법에 대한 논문을 포함하였다. 그 이후, 포르투갈인들은 기후 변화에 따른 해류와 바람의 세기를 고려하여 다양한 항로를 이용할 정도였으며, 특히 항해법에 대한 정보 중 지도와 경로를 유출하면 사형을 할 정도로 정보관리가 엄중했다. 이런 정보는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왕립기록보관소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과거 수많은 연구는 근본적으로 얕은 바다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바다의 깊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영국 왕립 해군에 의한 세계의 해안선을 도식화 작업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해양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순수하게 과학을 목적으로 둔 최초의 해양 탐사는 챌린저 탐사이다. 영국 정부가 영국 왕립 학회의 권고에 따라 세계의 바다를 탐험하고 해양의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는 탐험을 발표를 하였다. 이후 스코트랜드의 에든버러 대학에서 자연사를 담당하던 찰스 와이빌 톰슨과 캐나다출신인 그의 제자 존 머레이가 시작하였다. 챌린저 호는 톰슨의 감독하에 약 70,000해리를 항해했다. 긴 탐사를 끝낸 챌린저호는 심해생물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는데, 약 4717종의 해양생물과 해양생물학이란 학문을 탄생시키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바다 수온, 퇴적물 채집, 심층수, 해류, 기상관측 등의 자료는 현대 해양학의 기초가 되었다. 이 영향으로 서방국가에서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믿음과 함께 해양 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해양학도 발전하게 되는데 1914년에는 최초로 바닥에서 반사되는 음파로 수짐을 재는 이른바, 소나 기술을 이용해 측심을 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1925년에서 1927년까지 약 2년동안 음향 측심기를 사용하여 약 70,000개의 해양 깊이를 측정, 수집하여 해저 수심도를 작성하였는데 이 탐사를 메테오 탐사라고 한다. 1957년에는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북극을 탐사하였다.
1978년 미국은 최초의 해양탐사용 위성 Seasat을 발사하여 해양의 수온, 해안선 등 해양 자료를 수집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그동안 바다에서 진행되던 해양학 연구가 인공위성을 사용하여 하늘 위에서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현대의 해양 연구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그리고 이와 관련된 생물권 분쟁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해양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기후 예측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며 더 나아가 지구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반응형